변호일기

검사님 증거 있습니까?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0-04-22 조회수 : 480

오원근 변호사의 최종변론 둘

“저는 이 사건을 맡았을 때부터 지금 최종변론을 하는 이 순간까지 과연 이 사건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사건인지 의문입니다”
“검사님, 건물 몰수를 구형했는데, 그렇게 구형할 만큼 증거가 있습니까?”

 

1. 법은 상식의 최소한

피고인은 도의원입니다. 군의원 두 번 하고 도의원으로 당선되어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젊어서 보험설계사를 하는 등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50대 늦은 나이에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학위를 얻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얻었습니다.
대학 과정에 현장 실습이 있습니다. 복지관과 어린이집에 가 실제 복지 실습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피고인은 당시 군의원 신분이라,
주변 초중고 학교 졸업식에는 가야 했습니다. 다녀오는데 길어야 3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갈 때 실습 담당 지도교사의 허락을 받았고, 그렇게 빠진 시간은,
실습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점심시간 배식, 아이들 등하원 지도 등으로 보충하였습니다. 빠진 시간이 전체 이수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검사는 위와 같이 빠진 시간이 있음에도 실습시간 전부를 다 이수한 것처럼 실습확인서를 작성, 제출하여 학점을 얻고, 자격증을 딴 것이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라고 기소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습확인서는 피고인이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습기관 지도교사가 작성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수사과정에서부터 자신들이 실무 지도 지식이 없어 오히려 피고인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했습니다.
사정이 위와 같다면, 피고인에게 허위의 확인서를 제출하여 업무나 공무를 방해한다는 고의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고의가 있어도,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설사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처벌을 해야 할 만한 가치가 없어,
검사가 기소유예를 하였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검사는 300만원에 구약식하였고, 법원은 벌금을 절반 깎아 150만원의 약식명령을 발부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의 지역 언론은 피고인을 음해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 이에 대해 피고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해, 일부 기자들은 잘못을 빌기도 했습니다.

판사가 물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으면, 도의원 신분에 영향이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영향이 큽니다.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으면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는데,
다음 선거에서 나가는데 커다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판사가 고민스러운 표정입니다.

제가 최종변론에서 첫머리에 꺼낸 말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맡았을 때부터 지금 최종변론을 하는 이 순간까지 과연 이 사건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사건인지 의문입니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처벌해야 할 사건만 법정으로 데려와 심리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걸 조절하라고 검사가 있는 것인데,
물론 저나 피고인의 일방적인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고민하는 표정을 역력하게 보였습니다. 최종 선고를 기대해 봅니다.
 

2. 검사는 증거로 말해야

법은 성매매 하는 것을 알고도 건물을 임대한 사람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판례는 더 나아가, 성매매 사실을 몰랐어도,
경찰로부터 그 임대 공간에서 임차인이 성매매로 조사를 받았다는 통지를 받으면 바로 임대차를 해지하여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방치하면 처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도시에는 마사지 업소가 많습니다. 그 업소들이 다 성매매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따라서 임차인이 마사지 업소를 운영한다고 해서, 임대인이 그곳에서 성매매 하는 것을 단속할 의무는 없습니다.
제 의뢰인도 성매매 사실을 알았다는 증거는 없었습니다. 검사는 범행기간을 2015년부터 잡았지만, 제가 일부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하여
검사가 2016년부터로 공소사실을 축소했습니다. 검사는 또 다른 사람 계좌로 임대료를 받은 것을 범죄수익 은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좌주는 건물 관리인입니다. 피고인에게 범죄수익을 은닉한다는 고의가 없었습니다.
판사도 은연 중에 범죄수익 은닉 관련 부분도 공소 취소를 해 달라는 의사를 비쳤으나, 검사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심리가 모두 끝나고, 검사가 구형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징역 1년 6월에, “건물을 몰수”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판사도 놀랐습니다.

“검사님 이런 몰수 구형도 하나요?”

검사, 어쩌구 저쩌구.

제가 최종변론을 할 순서입니다.

“검사님이 건물 몰수 구형을 하셨는데, 그런 구형을 하려면, 적어도 피고인이 성매매 업자와 공모하여 범행을 저지르거나,
적어도 피고인이 그 성매매 사실을 알고도 용인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증거가 있습니까?”

죄형법정주의.

어떤 사람을 처벌하려면 반드시 법에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입니다.
처벌 규정이 있어도, 처벌은 범죄의 정도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또한 죄형법정주의 한 내용입니다.
제 기준으로는, 어제 검사들의 주장이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모처럼, 신나게 변론한 하루였습니다. 공도 많이 기울인 사건이라, 선고 결과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