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기

너무나도 반가운 감자 꽃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0-04-27 조회수 : 348

아있는 것의 특징은 무엇일까? 변화다. 안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를 바꾸어 가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런 살아있음(변화)의 극치는 자연에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에서 우리는 생명의 꿈틀거림(변화)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생명이어야만 삶의 가치(태어난 이유)를 다 누린다고 할 수 있다.
 

면, 자연을 거스르는 우리의 도시 삶은 어떠한가.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인공이 얼마나 판치는가.
가게 안에 놓는 조화(造花, 생화의 반대)는 1년 내내 스스로의 변화가 거의 없다. 먼지가 내려앉아 때가 낄 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조화를 요즘은 공동묘지에도 꽂는다. 돌아가신 분은 땅속에서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무덤 바깥에 썩지 않는 조화를 놓는 것이 과연 어울리는가. 이것은 돌아가신 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일이다.
또 프랜차이즈 영업점은 어떤가. 전국 어디서나, 같은 계열의 가맹점이면, 파는 음식이나 물건, 내부 인테리어,
직원들의 영업방식 따위가 거의 같다. 나름대로는 고품격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제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소비패턴으로 획일화시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개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축사에서 키우는 돼지, 닭, 소 등에게 획일적인 사료를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위와 같이 고정되고 획일화 되어 변화하지 않는 환경에 익숙하다 보면, 나 자신도 그렇게 고정되고 획일화되어 나만의 개성이 없어진다.
나 자신만의 참된 욕망이 없어지고 그냥 주어진 것에 순응하게 된다. 이런 삶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여기서 여러 부작용이 나온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0년 이상 가장 높은 것도 이런 부작용과 연결되어 있다.
 

사는, 그것도 사람 손이 작용하는 것이라, 자연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고정되고 획일화된 도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휴식처가 될 수 있다.
제한적이나마 그곳에서 생명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아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비닐까지 쓰지 않는다면,
거기서 나오는 온갖 먹을 것은 우리 몸에도 아주 유익하다. 이런 믿음을 갖고 난 오래 전부터 텃밭농사를 지어 왔다.
오늘(5월 23일) 밭에 가서 가장 반가운 것은 감자 꽃이었다. 우리 밭은 몇 년 전 흙을 채워 높이를 올린 것이라 땅이 기름지지 않고 지렁이도 없다.
그런 이유로 아직 작물이 썩 잘 되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감자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다. 그러니 수확한 감자도 부실했다.
그런데 올해는 꽃이 여기저기 환하게 잔뜩 피었다. 감자의 줄기와 잎도 무성하다. 잡초가 땅 위로 머리를 내밀 때마다 호미로 긁어주어,
비닐 없는 밭이 깔끔하고 아름답다. 이제는 감자 줄기와 잎이 무성해져서 그 그늘 때문에 잡초가 크게 자랄 일은 없다.
사람으로 치자면 대학교까지 다 보낸 셈이다. 감자 꽃을 보면서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기는 제때 거름을 하지 않아 부실하다. 그런데 밭둑에서 아주 실한 놈을 두 개 만났다. 작년 밭둑에 몇 포기 옮겨 심고는 잊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제대로 열매를 맺었다. 온몸에 스며든 빨간색이 그동안 햇볕과 바람과 비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건강한 딸기는 근래 처음 본다. 비닐하우스에 차단되어 햇볕과 바람과 비를 제대로 맞지 못하는 딸기와 어떻게 비교하랴.
마음에 쏙 드는 딸기가 비록 단 두 개지만 그것이 내게 가져다 주는 즐거움은 그 무엇으로 표현해도 부족하다.
 

엄탕은 거기 버린 감자, 박 등에서 생명이 터져 나와 무성하기 그지없다. 지난 어린이날 심은 고추, 오이, 토마토, 참외, 수박도
새로운 땅에 완전히 정착한 모습이고, 5월 6일 심은 조선오이 싹도 잘 나왔다. 오늘은 검은깨를 심었다.
이렇게 우리 밭은 온갖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김을 매주기는 하지만, 잡초들도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공부거리가 된다.


감자 꽃                                                             건강한 노지딸기 


이름 모를 꽃                                                       아주 높게 만든오이, 토마토 지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