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속리산이 되리라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1-02-08 조회수 : 371



코로나 때문에 먼 곳 산행은 하지 못하고 주로 보은에 있는 시골집 주변의 산을 다니고 있다
. 대개가 속리산 권역이다. 어제는 괴산과 상주의 경계에 있는 백악산(856m)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많은 7시간이나 걸렸다. 사담리 쪽으로 내려와 걸으면서 나는 속리산이 되리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리산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이젠 정말로 속리산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죽어서도 속리산이 되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화장을 해 속리산 어딘가에 뿌려지면 좋겠다. 그 어딘가로 하나 떠오르는 곳이 있는데,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다.

 

주말 늦잠을 자는 선재를 깨워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로 갔다. 운전을 해 주는 녀석 덕분에 산행이 풍부해진다. 날이 푹하다. 선재와 같이 타고 온 아내를 돌려보내고 혼자서 산길로 접어든다(09:20). 전에 친구들과 입석초등학교 쪽에 올라, 지금 출발한 곳에서 산행을 마치고, 한참 동안 맥주를 마시며 담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금 지나니 왼쪽에서 흰 개가 나를 보고 짖는다. 내가 손을 흔들어주니, 짖는 것을 멈추고, 무안했는지 고개를 다른 곳으로 애써 돌리며 내 시선을 피한다.

 

언 옥양폭포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옥양폭포는 널찍한 바위가 들려진 틈새로 물이 쏟아지는 게 특색이다. 물이 많을 때는 그 모습이 참 멋있다. 그런데 얼어붙은 옥양폭포는 폭포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널찍한 바위가 폭포의 모습을 가린 때문일까? 이른 봄 다시 와 얼음 속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 가면 가장 흔하게 보는 나무가 참나무, 소나무인데, 이들의 경쟁이 심하다. 서로 더 햇빛을 보려고 마구 키를 키운다. 참나무가 떼 지어 사는 곳에 소나무가 끼어 자라는데, 그 소나무에게는 겨울이 좋은 기회다. 참나무가 다 잎을 떨어뜨린 상태니, 소나무는 이때를 기회삼아 마구 햇빛을 받아들인다.

 

날이 흐리고 미세먼지도 있어 조망은 막혔다. 아쉽지만,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솥뚜껑바위에 이르러 보이차를 마셨다(10:35). 이 바위는 원래 강아지바위로 불렸는데, 표지판에는 공단에서 이름을 공모하여 지금은 솥뚜껑바위로 부른다고 하였다. 생긴 모습을 따라 진 것일 터인데, 내게는 이티처럼 보였다. 내게는 이티바위.

 

정상이 가까워져 오는데 조망도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헬기장에 다다랐다(11:27). 출발한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지도에는 이 헬기장에서 백두대간인 밤티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밤티에서 출발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다음에는 이 길로 가 보아야겠다.

 

페이스북에서, 시인이신 이상훈 형님에게 백악산 간다 하니 너럭바위를 꼭 가보라고 하였다.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정상 바로 못 미쳐 직사각형의 너른 바위를 하나 만났다. 그게 너럭바위가 아닌가 싶었다. 평평한 표면 위로 눈이 고르게 쌓여 있었다. 그곳에 오르니 새들이 마음껏 놀다 간 흔적이 보였다. 새들의 놀이터였다.

 

철계단을 만났다. 반대편에서 한 젊은이가 걸어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핸드폰을 보면서 두리번거렸다. 그는 잠시 후 내게, “내려갈 때 다른 길로 들어 우회를 하였는데 좋은 길이 나와 다시 거꾸로 올라와 확인 중이라며 웃었다. 발걸음을 되돌려서라도 그렇게 제대로 된 길을 확인하려는 그의 의지가 기특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잠시 후 나도 연출하게 된다.

 

정상(856m)이다(12:14). 자연석으로 만든 표지석이 예쁘다. 20136월 법인 산악회에서 올랐을 때 표지석은 까만색의 틀에 박힌 사각형이었다. 한 쪽에서 부부가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어디서 올라왔는지 물으니 입석초등학교다. 옥양폭포에서 정상까지 3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니, 조금 의아해 하는 표정이다. 내려가는 것은 2시간이면 될 것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큰 바위가 바람을 막아 준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새로 산 술병에 담아온 고량주를 반주로 삼아서.

 

돔형바위를 앞두고 반대편에서 오는 외국인 두 명을 만났다. 백악산까지 올 정도면 산을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그들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Hello" 하면서 어디서 출발했냐고 물었다. 바로 답을 못한다. 한국 지명에 익숙하지 않아 어떻게 말할지 모른 것이다. 내가 입석초등학교?”라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러시아에서 왔다고 하였다. 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얼굴이 맑아보였다. 서로 즐거운 산행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앞으로는 멋있는 바위능선이다. 길이 어떻게 나 있을까 궁금했는데, 바위 위로 지나간다. 큰 돌이 갈라진 틈도 넘어야 하는데, 정말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이었다. 건너가니 덕봉이라는 표지판도 있었다. 덕성초등학교 25회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 바위에서 반대로 내려가는 길이 없었다. 다시 심장이 쫄깃해져, 왔던 길로 돌아가도, 앞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아주 난감한 상황에서, 큰 바위 왼쪽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길은 없었지만, 그렇게 돌아가면 제대로 난 등산로와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다시 등산로를 따라 돌아가, 내가 찾지 못한 길을 확인하였다. 길은 덕봉으로 오르기 전 오른쪽으로 있었다. 그곳에 표지기 하나 붙였다. 아까 만났던 젊은이가 떠올랐다.

 

능선길에서 왼쪽으로 5분 정도 거리에 대왕봉(819m)이 있다. 눈이 다 녹아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정상엔 돌탑을 쌓고 그 위에 표지석을 얹었다. 이것도 덕성초등학교 25회 작품이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얼마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인가.

 

낙영산, 무영봉, 가령산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다리를 틀고 앉아 20분 정도 명상에 잠겼다. 까마귀가 운다. 바람소리가 스친다. 자연스럽게 호흡조절을 하니 몸이 편안해졌다. 콧물이 새어나와 바람에 날렸다. 앞으로 산행하면서 이런 명상을 한 번씩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수안재에서 사담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15:15). 반대로 가면 입석초등학교인데, 이 길이 정규 등산로다. 사담리 쪽은 길이 희미했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큰 바위도 없어, 계곡을 따라 길이었을 만한 곳을 따라가면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길을 찾아(만들어) 가면서, 나도 이젠 경륜이 쌓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한결 다가선 느낌이었다.

 

개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그 때 갑자기 앞서 말한 속리산이 되리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속리산이 되어 있지 않은가? 나중에 아내에게 이 말을 하니, 아내는 속리산이 받아줄까?”라고 받아쳤다. 오랜만에 계곡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너무 차가워, 무릎까지만 담그고 물을 몸에 끼얹었다. 그러고 옷을 입으니, 훈훈해지는 몸기운이 좋았다. 속리산과 더 가까워진 산행이었다(16:30).

 

일시 : 2021. 2. 6.() 흐리고 미세먼지

코스 : 옥양폭포 ~ 이티바위 ~ 정상 ~ 대왕봉 ~ 수안재 ~ 사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