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울 엄마 시집가던 길 (1)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1-02-15 조회수 : 376

울 엄마 시집가던 길 (1)

설 연휴 첫날 오전, 청주시 목련공원에 다녀왔다. 나보다 세 살 어린 고종사촌동생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자리는, 꼭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엔 늘 같이 어울려 놀곤 했다. 동생의 아버지, 그러니 내겐 고모부는, 우리에겐 기억이 없을 정도로 일찍 돌아가셨다. 고모도 10여년전 세상을 뜨셨다. 가까운 피붙이로는 사촌동생 형제만 남았는데, 이젠 그 중 그 형이 또 세상을 달리한 것이다. 오촌 조카들이 스무 살 안팎이라, 남은 동생이 상주 노릇을 다 했다. 동생이 살아 있을 때, 동생 형제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게 마음 아프고 죄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배낭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애초 계획은 산외면 탁주봉에서 미원면 계원리로 넘어가는 싸리재까지, 그곳에서 시군계를 따라 북쪽으로 가고리까지, 거기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옥화봉, 봉황터널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타는 것인데, 이날은 오후만 산행을 하는 것이라, 가고리까지 가기로 했다.

 

산행의 시작은 구티재다(13:35). 난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정도 탁주리 못골에 살았다. 어머니 고향이 탁주리다. 못골에서 이 구티재를 넘어 산외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고개를 바로 가로지르는 사람 길이 있고, 그 옆 작은 계곡에서 가재도 잡았다. 고개를 넘어 집에 올 때 배가 무척 고팠던 기억이 있다.

 

마음도 몸도 무거워 천천히 올랐다. 탁주봉(550m) 오르는 길은 짧지만 가파르다. 다 올라 잠시 쉬려는데(14:08), 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산불감시초소였다. 이런 초소를 세울 만큼 탁주봉은 사방이 탁 트였다. 작년에 탁주봉에 올랐다 내려가면서, 탁주봉 초소로 일하러 오는 그를 본 적이 있다. 그에겐 무전기도 있다. 몇 시까지 일하시냐고 물으니 530분에 내려간다고 했다.

 

보통 탁주봉은 그렇게 올랐다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간다. 그런데 내가 가는 길은 북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내려가는 길도 경사가 가팔랐다. 오른쪽에 있는 동네가 바로 어머니가 태어나 자란 탁주리다. 어미닌 그곳에서 20대 중반까지 살다가, 청주시 문의면 남계리로 시집 갔다.

 

탁주리에서 삶은 고단했다. 외할머니가 아파,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다니고 집안 살림을 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시집 간 곳의 삶은 더 힘들었다. 농사지을 자기 땅 하나 없는 소작농에다, 아버지는 그렇게 부지런한 편이 못 되고, 술도 많이 드셨다. 어머니는 생선 따위를 지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내가 중학교 들어갈 때부터는 오일장을 다니며 곡물 노점상을 시작했다. 그 노점일은 지금도 하신다. 재작년 아버지 돌아가셔서 산소로 모실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합장이 싫다며 봉분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것만으로도 어머니의 시집 와서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끔 눈이 젖는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내가 지금 가려고 하는 길이, 바로 어머니 시집가던 길이었다. , 봉황터널에서 청벽산을 거쳐 한남금북정맥에 올라 피반령을 지나 문의면에 있는 샘봉산까지 가는 길에 오른 것이다. 어머니 시집가던 길을 더 정확히 따라 가자면, 탁주봉에서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가야 할 것이나, 그 길은 전에 갔었다. 이번에 반대편의 다른 길을 타고 가면 한남금북정맥의 국사봉 쯤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피반령으로 가는 길이 어머니 시집가던 길이다.

 

산에는 주능선과 거기서 뻗어나간 가지능선이 있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지능선으로 잘못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탁주봉에서 내려가면서도 그랬다. 지도와 나침반으로 정확히 가늠하면서 가야 하는데, 낮은 산이라 만만히 본 것이다. 아직 산행 초반이라 다시 주능선에 오르는 것이 지겹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주능선에서 북쪽으로 꺾어져 내려가 앉은 고개에 임도가 있었지만, 그것을 따라 내려가지 않고 직진하여 산이 끝나는 곳까지 갔다. 농로를 따라 20여분 걸어 원평교를 지나 싸리재에 닿았다(15:42). 어느새 탁주봉이 아득하게 보인다. 원평교 아래 달천은 어머니가 올갱이를 잡아 국을 끓이고, 나도 어릴 때 그곳에서 친구들과 멱을 감던 곳이다. 싸리재에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며, 달천과 탁주봉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싸리재는 지난 번 아들과 함께 주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온 곳이다. 그곳은 그렇게 3대를 이어주고 있었다.

 

싸리재부터는 보은군과 청주시를 가르는 경계다. 앞으로 문의에 있는 샘봉산 직전까지 계속 그렇다. 보은군은 산외면, 내북면, 회인면, 회남면으로 이름을 바꾸고, 청주시는 미원면, 낭성면, 가덕면, 문의면으로 이름을 갈아탄다.

 

이 길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다. 보은군계를 따라 지나갔다는 속리산악회 표지기가 있고, 장거리 산행의 선두주자 J3클럽 표지기도 있다. J3클럽에서는 서원리에서 속리산알프스 산행을 시작하여 봉황터널에서 마치기도 했다. 오지산행 전문인 청산수산악회 표지기도 있는데, 카페를 보니, 이 산악회의 조삼국 회장이 작년에 일만봉 등정을 마쳤다고 한다. 이번 산행에서 그가 9,000봉 등정을 기념하는 표지기를 붙인 것을 보았다. 한자 이름(趙三國)이 특이하여 기억한다.

 

능선 왼쪽은 나무로 막혔다. 오른쪽은 벌목이 되어 확 트였다. 주봉, 신선봉이 시원하게 보였다. 그 능선 길을 걷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나의 산행은 돌 던져진 뒤 파문처럼 퍼져 나간다. 어디까지, 어떻게 갈지 알 수 없다. 울엄마 시집가던 길까지 떠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 주변을 제대로 아는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믿음이 늘 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해가 좀 길어져서 다행이다. 싸리재에서 가고리 가는 도중에서 또다시 가지능선으로 빠졌다가 다시 올랐다. 어둑해지는 늦은 시간대의 산행도 괜찮았다. 가고리 고개에 다다르니, 6시가 조금 못 되었다(17:54). 앞으로의 산행이 기대된다. 마음은 벌써 문의 샘봉산에 가 있다.

 

일시 : 2021. 1. 11. () 맑음

코스 : 구티재 ~ 탁주봉 ~ 싸리재 ~ 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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