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화전민 집터를 뒤지다 (2021. 8. 28. 시루봉)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1-08-31 조회수 : 289

날이 흐리기는 해도 비가 온다는 말은 없어, 집사람과 산행길에 나섰다. 갈 산은 문경과 상주 경계에 있는 시루봉(876m). 처음 가는 산은 늘 불안하고 설렌다. 들머리는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난코스를 만나지 않을지 조금은 걱정되지만, 새로운 곳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기대로 설레기도 하는 것이다.

 

보은 장갑리에서 활목재와 밤티를 넘고, 화북면에서 왼쪽으로 틀어 2km 정도 지나, 다시 왼쪽으로 틀고 화산리 쪽으로 쭉 올라가니, 예상했던 곳에 시루봉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었다. 표지판은 시루봉까지 2시간 걸린다고 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길 아래로 내려서자마자 개울이다(08:55). 비가 온 뒤라 물이 많다. 개울 두 개가 만난 곳에서 물이 넘쳐나 길 위로 쏟아졌다. 물이 합쳐 흘러나오는 모습이 멋졌다. 신발을 벗고 물길을 건넜다. 차도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라가다가 길이 끊겼다. 다행히 밭에서 일하는 분이 있어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조금 내려와, 길을 찾아 올라가다가 다시 물길을 건너니 본격적인 산행길이 나왔다. 길은 물길을 따라 올라갔다.

 

10여분 오르니, 왼쪽으로 머위가 많이 보였다. 머위가 남다른 향에 맛이 좋고 암에도 좋다고 하여, 우리 부부가 즐기는 것이다. 요즘은 억세서 나물로는 못 먹고, 머윗대를 삶아 껍질을 벗겨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다. 뜯으니, 양손으로 두 묶음이 되었다. 일회용 비닐 우비로 감싸 배낭 밑에 매달았다.

 

머위가 난 곳은 옛날 화전민 집터였다. 배와 감이 땅에 떨어져 있어 위를 보니 나무가 엄청나게 크다. 키가 큰 낙엽송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햇빛을 받기 위해 같이 키를 키웠다.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 없는 높이다. 잔뜩 달린 배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진, 배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배들이,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상하지 않고 멀쩡한 것도 꽤 되었다. 산행계획은 정상에 올라 다른 길로 내려오는 것이라 그 배들을 무겁게 지고 갈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발길을 옮기려고 하는데, 한 남자가 올라왔다. 긴 장화를 신은 모습이 약초꾼이다. 여름 싸리를 따러 간다고 했다. 시루봉 오르는 길이 무척 힘들어, 자기도 거길 다녀오면 낮잠을 자야 한다고 했다. 우리 행색이 산행을 자주 하는 모양이 아닌 걸 보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우린 등산복이 아니라,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왔다. 난 반바지 차림이었다. 풀로 덮인 길이 나오면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길은 작은 돌들로 덮여 있었다. 능선까지 조금의 에누리 없이 계속 오르막이다. 땀이 줄줄 흐르는데 시원했다. 이런 때 산행의 참맛이 난다. 능선에 오르니(10:23), 시루봉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도 길이 잘 나 있었다. 이 길은 비치재로 가는데, 비치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 왼쪽으로 가면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다. 비치재를 넘어가는 길은 속리산 둘레길로 개발되어 있다. 화산리 쪽으로 내려가면 천연기념물 292호로 지정된 반송이 있다.

 

능선에서 정상 쪽으로 걸어가다가 흰 꽃을 만났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삽주였다. 삽주라면,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가끔 나오는 약초다. 삽주를 만난 때문인가, 계획을 바꿔, 정상에 간 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면 화전민 집터에 있는 배도 주워갈 수 있다. 삽주 위 나무에 세광고 31산악회 표지기를 달아놓았다. 가다가 삽주 4그루를 또 만났다.

 

시루봉 정상은 통으로 된 바위다. 경사가 있어 밧줄이 늘어져 있는데, 그것을 붙잡지 않고 갈 만했다. 불안한 아내는 그것을 꼭 잡고 갔다. 서쪽으로 속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능선과 흰 구름,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위 위로 난 풀이 보기 좋았다. 정상에서 청화산 쪽으로 가는 바위 능선은 매우 날카롭고 양쪽이 낭떠러지라 위험해 보였다(11:15). 나만 조심스럽게 건너편 바위까지 다녀왔다. 그 길에 바위 위로 난 난쟁이바위솔 꽃에 한참 머물렀다.

 

내려오는 길은 이미 겪은 때문인지 좀 가깝게 느껴졌다. 아까 보아두었던 배를 잔뜩 주워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그 무거운 것을 어찌 드느냐 했다. 산행 초반에는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는, 근육이 단련된 때문인지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를 세운 곳에 돌아와 차에 타려고 하는데 길 건너편 풀숲에서 잔대꽃이 보였다. 줄기가 크더니 뿌리도 길었다. 머위, 삽주, 돌배, 잔대까지 얻은 게 많은 산행이었다.

 

산행한 날 : 2021. 8. 28. (토) 대체로 흐림

코스 : 용유리 ~ 능선 ~ 정상 ~ 능선 ~ 용유리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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