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10마리나 되는 멧돼지를 세 번이나 보다 (사랑산)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2-03-30 조회수 : 169

2022. 3. 20.(일) 흐리고 가끔 비

토요일에 비가 와 일요일에 산에 가게 되었는데, 이날도 흐리고 가끔 비가 왔으나 가늘고 양도 적어 산행에 걸림이 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전북 고창 선운산으로 가선운사 동백꽃 구경을 하려고 하였으나가는 데만 3시간이나 걸려 포기하고, 보은 집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괴산 사랑산(647m)으로 갔다사랑산은 전에 해균이와 함께 가봤는데술에 많이 취한 탓에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루 전 토요일에는 산에 눈이 내렸다. 아직 높은 산은 흰 눈으로 덮여 웅장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사랑산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청화산, 조항산이 그랬다. 설산은 언제나 신비롭고 가슴 설레게 한다.
 

사기막리 용추슈퍼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09:13). 주차비가 3,000원이다. 산 아래는 눈이 녹고 비가 내려 길이 촉촉하게 젖었다. 걷는 느낌이 좋았다. 아내는 지난주 초 코로나 백신 3차를 맞아 운동을 못하다 오랜만에 산에 왔다. 일주일에 두세 번 산행하다가 못하니 얼마나 좀이 쑤셨을까? 다리 근육이 다 빠졌다며 아쉬워했다. 그동안 산행을 제대로 못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왼 발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올랐다.

등산로 처음은 빗물에 많이 패였다. 통나무라도 가로막아 흙이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선재와 산행하면서 예쁜 오리나무꽃을 보았던 것을 떠올리며 걸어가다가 이번에도 오리나무꽃을 보았다. 자두빛을 띤 새끼손톱보다 작은 암꽃은 지금 피고, 길게 늘어진 수꽃은 1월에 핀다고 한다. 때가 되면 생명은 어김없이 스스로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산이 높아지면서 눈도 많이 쌓였다. 사랑산은 바위산이다. 곳곳에 멋진 바위가 자주 나온다. 처음 만난 바위 무리는, 그 무리에서 갈라져 나가려는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그것이 떨어지려면 몇 만 년은 걸리지 않을까? 휴대폰을 세로로 세워 찍으니 사진이 아주 멋지게 나왔다.
 

그 바위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내가 오른쪽 20여미터 아래에서 소리나는 곳을 가리켰다. 멧돼지 무리였다. 열 마리 정도 되었다. 우리 인기척에 일부는 멀리 도망가고 두어 마리는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 나중에 도망간 무리를 뒤따라갔다. 맨 뒤에 간 녀석들이 부모가 아닌가 싶다. 작년에 산행하다가 처음으로 멧돼지 4마리를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열 마리나 되는 멧돼지를 보다니, 놀라웠다. 아내도 놀라워하면서 무서워했다. 잠시 앉아 차를 마시며 멧돼지들이 더 멀리 가기를 기다렸다.
 

차를 마시고 100여미터 갔을까, 바위 뒤쪽 안 보이는 곳에서 아까 보았던 멧돼지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 도망갔다. 멀리 가지 않고, 녀석들도 바위 뒤에서 우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모처럼 봄에 내린 눈에, 녀석들이 떼를 지어 노는데, 우리가 방해하는 꼴이 되었다. 이 멧돼지들은 한 번 더 봤다. 두 번째 본 곳에서 남서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사랑산 정상이 있는 북서쪽으로 틀기 직전, 아까 본 멧돼지들이 우리 오른쪽으로 또 쏜살같이 지나갔다. 혼자였으면 무척 긴장되고 두려웠을 것인데, 아내와 같이 있어서 그런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누구라도 같이 하면 기댈 수 있는 법이다. 세 번이나 연속하여 보니, 멧돼지들도 우리가 갑자기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한 자기들이 먼저 도망가지,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정상에서 다시 앉아 차를 마셨다(10:48). 그곳은 눈이 두껍게 쌓였다. 한겨울 산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소나무 위로 두껍게 쌓인 눈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주능선에서 용추폭포로 빠지는 지능선을 따라 내려가는데 경사가 가팔랐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그런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왼 발목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매일 백팔배, 30층 계단타기, 자전거 출퇴근으로 다리를 단련시켰는데, 한 달 이상 그런 걸 못하니, 다리 근육이 다 풀린 모양이었다. 뜻밖에도 아내는 괜찮다고 했다.
 

용추폭포는 2단이다(12:00). 사랑산이 그리 큰 산이 아님에도 아주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인공적인 표지판과 튜브가 널려있어 자연스런 맛을 떨어뜨렸다. 그것들 때문에 사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용추폭포에서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가는 길옆으로 개울이 예뻤다. 군데군데 여름 휴양시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건물 구조가 자연과 어울림은 생각하지 않고 돈을 버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가는 도중 의뢰인에게서 사건 관련하여 메시지가 와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에 돌아가 피곤을 무릅쓰고 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호흡을 해도 그 무거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수행이 크게 부족한가 보다. 그래도 봄날, 눈 산행을 만끽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멧돼지까지 여러 번 보아 더욱더 기억에 남은 산행이었다. 용추슈퍼에서 출발할 때 주지 못한 주차비를 주었다(12:24).



용추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