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변화무쌍한 날 오른 천관산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5-05-23 조회수 : 24

변화무쌍한 날 오른 천관산

 

2025. 1. 27.() 비와 눈이 오고 흐림.

긴 설 연휴라 시간을 내 장흥에 있는 천관산에 다녀왔다. 전날 가족과 함께 보성녹차밭을 둘러보았다. 녹차 밭 위 산꼭대기에서 녹차 밭, 삼나무 숲, 바다로 이어지는 풍경이 아주 멋졌다. 녹차 밭 안에는 곳곳에 목련이 있는데 꽃이 피면 녹차 밭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해빈이가 녹차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수문해수욕장에 있는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해변과 마을 풍경이 소란하지 않고 소박하고 조용한 게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비가 온다는 예보에 제대로 산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계속 술을 마시고 과식까지 한 탓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에 밖에 나가니 가는 비가 오고 있었다. 해빈이만 빼고 나머지 세 명이 산에 가기로 하고 천관산을 향해 갔다. 장재도를 건너며 가는 해변길이 아름다웠다. 산 아래에 다다르니 비바람이 세어지고 기운도 차가워졌다. 마음이 약해진 아내가 산행에서 빠지겠다고 했다. 선재와 난 옷을 단단히 챙기고 비옷을 입고 산을 향해 갔다. 날씨가 어떤 변덕을 부릴지, 지난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체력이 괜찮을지 조금은 걱정되었다. 부부 한 팀이 우리를 앞서갔다.
 

남쪽에 있는 산이라 중부 지방에서는 보지 못하는 나무들이 많았다. 동백도 곳곳에 심겨 있는데 꽃을 피운 것도 있었다. 편백나무 숲도 있었다. 어느새 비가 눈발로 바뀌었다. 우린 3코스로 올랐다. 아스팔트를 벗어나 처음으로 접어든 산길은 편안한 흙길이었다. 흙의 감촉을 느끼며 걸으려고 하였다.

산에 올라갈수록 눈발이 짙고 세어졌다. 바람도 심했다. 바람에 큰 나무 두 개가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올랐어도 눈발과 연무에 조망은 트이지 않았다. 천관산에는 멋진 바위가 많다는데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아 무척 아쉬웠다. 실제로 눈앞에 바로 있는 바위만 볼 수 있을 뿐 멀리 있는 바위들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바닥에 눈에 꽤 쌓였지만 앞서간 두 사람 발자국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주능선까지 계속 오르막이었지만 경사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남쪽에만 있는 노각나무가 몇 그루 보여 반가웠다.

환희대(720m)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억새군락이 있는 주능선이다. 억새의 노란색과 흰 눈이 대비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람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술도 한잔하면서 소시지 등으로 배를 채웠다. 선재와 같이 있으니 외롭지 않았다. 추운 날 깊은 산에 혼자 앉아 무언가를 먹노라면 쓸쓸하고 조금은 서러울 때도 있었다. 천관산 정상(724m)에는 사람이 네댓 명 있었다. 장흥이 고향인 흥수 형님에게 연락하니 이틀 전에 이미 장흥을 다녀갔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다행스럽게도 연무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사방이 트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 바다와 그 안쪽으로 만들어진 간척지가 드넓게 보였다. 옛날 장비도 없는 때 그 간척지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올라온 3코스 능선으로 우리가 올라오면서 본 바위들과 2코스에 펼쳐진 바위들이 아주 멋있게 보였다. 천관산의 백미는 저 바위들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날 천관산은 눈과 안개를 피워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 배롱나무가 한창 꽃을 피울 때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아래는 바람이 세고 추웠던 높은 곳과 확연히 달라 봄기운마저 느껴졌다.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가 깊게 숨을 쉬니 기운이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산행 중에 넘어진 대나무를 잘라 지팡이로 썼는데 기념으로 가져왔다. 장흥읍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읍내에는 소설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한강의 고향이 장흥이란다.

 

 

(2025. 1. 27.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