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0-04-27 | 조회수 : 346 |
2018. 12. 8.(토)
한남금북정맥 마지막 17구간째다. 애초 12구간으로 계획했는데, 당일 컨디션, 날씨 등의 사정으로 5구간이 늘어나다.
이날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영하 10도가 넘었다. 미리 채비를 단단히 하라고 하였고, 핫팩까지 준비했다.
난 등산화를 가지러 새벽에 보은까지 다녀왔다. 피곤해, 목적지인 당목리 고개까지 가는 차 운전은 이상국 사무장님께 부탁했다.
차는 3대가 갔다. 우리 차에 나와 이사무장님, 김상수 사무장님, 성낙현 팀장님 차에 이수아, 권영희, 김병호 팀장님 차에
박초희, 강수경, 최은진, 박지혜 등 모두 11명이 참여했다.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많이 참여한 숫자다.
김 팀장님, 이수아, 권영희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낙현, 이상국 사무장님과 난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김상수 사무장님은 한 번, 최은진은 3번 빠졌다.
이번엔 빠졌지만, 조현준 사무장은 11번, 박지혜도 9번 참여하여 정맥의 기운을 반 이상 받았다.
이들 7명이 이번 정맥 종주의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구간은 큰 오르막이 없다.
그러나 난 지난 3일간 밤늦게까지 회식을 하고(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음), 이날 새벽에는 차를 운전해서 보은에 다녀오고,
추운 날씨 때문에 옷을 잔뜩 껴입은 탓에 몸이 무거웠다. 성팀장님이 그런 나를 금방 알아보고, 몸이 무거워 보인다고 했다.
사람 보는 안목이 대단하다. 그동안 우리 산악회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산행을 준비, 진행하고,
또 사진도 열심히 찍는 세밀함 덕분에 그런 안목이 생겼을 것이다. 애정과 치열함이 있는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모처럼 나온 분들 때문에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내가 앞장서서 그렇게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바로 뒤에 오는 최은진, 박지혜가 후미가 많이 떨어졌다며 속도를 늦추라고 한다. 적당한 지점에서 쉬면서 후미를 기다렸다가
모이면 다시 출발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17번 국도는 지하차도로 지났다. 내가 좀 빨리 앞서 갔더니,
뒤따르는 지혜가 지하차도 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다시 산으로 오르려고 하였다. 소리를 질러 내 쪽으로 오게 하였다.
도솔산 비로봉에 오르니 “풀 한 포기마저 사랑하는 마음이 불심입니다”라는 표지판이 있고, 도솔산 보현봉에는
“나와 자연이 진리로 한 덩어리임을 하는 것이 불심입지다‘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진정한 산행인이라면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도 사랑하고 그렇게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이 산행의 목적이어야 한다.
걸미고개에 이르기 직전 양지 바른 곳에 있는 한 무덤에서 쉬려고 하는데, 바로 옆에 고물상 같은 곳에서 일하던 사람이
그곳은 사유지라면서 한 소리 하였다. 성 팀장님이 바로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가 양해를 구하니 더 이상 아무 말이 없다.
성 팀장님은 언제나 그렇게 문제 해결에 대단히 적극적이다. 산행하면서 많이 배운다.
따뜻한 무덤가에서 내가 새벽에 보은에서 가져온 꼬냑을 몇 잔 마시며 추위를 달랬다.
걸미고개에서 계속 정맥을 타려면 안성CC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10여분 오르니, 왼쪽으로 다시 정맥 표지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감나무에는 빨간 감들이 수십 개 예쁘게 달려있다. 김 사무장님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감 두어 개를 땄다.
나중에 집에 와 보니, 이 감은 어쩌다 내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얼려 먹을 요량으로 냉동실에 넣었다.
계속 골프장을 오른쪽에 끼고 나아갔다. 골프 치는 사람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면 어디냐고 물어와, 칠장산이라고 답했다.
그 사람은 아마 골프보다 산행에 더 관심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칠장산 정상이 1.5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산행이 너무 짧은 것 같아 벌써부터 아쉬웠다.
김병호 팀장님이 자꾸 처졌다. 내가 맨 뒤로 가, 김 팀장님과 함께 했다. 자기 페이스대로 가겠다며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나, 그렇게 해서 될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바로 뒤에 붙어 가면서 호흡을 길게 하라고 하였다.
자주자주 쉬면서도 꿋꿋하게 갔다. 그렇게 3정맥 분기점에 닿았다.
그 분기점은 우리가 타고 온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이 만나는 곳이다.
전에 이곳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올라 시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이렇게 한남금북정맥을 타고 와서 다시 보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칠장산은 그곳에서 200여미터 더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김 팀장님을 그곳에서 쉬게 하려고 하는데, 팀장님이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라, 같이 정상으로 향했다.
걸으면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은 확 트였다. 드디어 정맥 종주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2년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 긴 구간을 언제 해내나 싶었지만,
쌓이고 쌓여가는 산행의 결과물은 그 자체로 추진력이 배가되었다. 단 한 순간도 중간에 포기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두들 비나 더운 날씨, 일행의 사정상 애초 계획했던 목표치를 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들이 있어 정맥 종주의 의미가 더 깊어졌다고 본다.
이번 정맥종주를 함께 한 분들의 가슴 속에서 정맥의 기운이 언제나 살아남아,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같이 해 준 분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화엄이재, 말티고개, 새목이재, 구룡치, 수철령, 구티치, 살티재, 추정재, 상봉재, 분젓치, 질마재, 칠보치, 솔티재, 모래재, 고리터고개,
보천고개, 행테고개, 삼실고개, 돌고개, 저티고개, 걸미고개. 우리가 지나온 고개들 이름이다.
이제는 내 사무실에 붙여놓은 한남금북정맥 지도도 떼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이 지도는 내가 작은 지도들을 일일이 오려붙여 만든 것이다.
그 지도에 우리가 간 길을 표시하고 그 길과 앞으로 남은 길을 바라보는 재미가 엄청 컸다.
2년간 함께 한 그 지도에 애정이 잔뜩 담겨 있지만, 새로운 산행을 기약하며 이 지도에 대한 미련을 끊고자 한다.
보은에 가져가 아궁이에서 태울 것이다. 벌써 새로운 산행이 기다려진다.
칠장사는 특이하게도 모든 건물이 다 맞배지붕이었다.
(2018. 12. 9. 17:00)
내 사무시에 붙여놓은 한남금북 지도, 중간에 끊어진 곳은 금왕 산업단지 개발로
정맥을 찾아 걷기가 쉽지 않아 과감히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