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5-05-23 | 조회수 : 25 |
수육 썰어 먹는 재미 (적상산)
향로봉과 적상산(1,034m)을 잇는 능선은 평탄하고 그 능선 아래로는 경사가 심한 바위 지대라 산 아래에서 보면 기차 바위를 올려놓은 듯하다. 저 급한 경사를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스러우나 막상 가 보면 등산로가 지그재그 형태로 되어있어 그리 힘들지는 않다. 난 이번이 두 번째다.
2025. 2. 22.(토) 날은 맑고 기온은 쌀쌀했다. 산행의 열기로 덥히면 금방 가실 추위였다. 31산악회에서 모두 8명이 왔으나 산에 오른 사람은 종호, 덕현, 정식, 나 넷뿐이었다. 나머지 4명은 다 몸이 좋지 않다며 빠지고 먼저 예약한 콘도에 가 있었다.
간밤에 살짝 눈이 왔다. 우린 무주IC 만남의광장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 등으로 10시 30분쯤 오르기 시작했는데 우리보다 앞서간 발자국은 두 사람뿐이었다. 향로봉 직전에서 이들 부부가 내려오는 것을 봤다.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날 산행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왼쪽으로 ‘수작 부리는 카페’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그늘은 얼음이 얼어 미끄러웠다. 아이젠을 차는데, 오랜만에 온 정식이 아이젠의 조임 플라스틱이 삭아 부러져 쓸 수 없었다. 산행 경험이 부족한 정식이에게 내 아이젠을 빌려주었다. 정식이는 전에 아버지에게 신발을 사 드렸는데, 아버지가 아끼느라 몇 년 동안 신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대로 두기는 아까워 자기가 신고 산에 올라갔는데, 이 신도 밑창이 떨어져 칡넝쿨로 묶고 내려오는 등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너무 아끼면 쓸 수 있을 때를 지나버린다. 최대한 얼음을 피해 조심해서 올라갔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는 덕현이가 뒤에서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올라왔다. 반면, 며칠간 술을 조절했다는 종호는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올라가는 길에는 최영 장군이 칼로 그어 틈을 냈다는 장도바위가 있고, 그 바로 위에 적상산성이 있다. 덕현이는 그곳에서 시산제를 지내자고 했는데, 그래도 능선까지는 가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산이 높아지면서 쌓인 눈도 깊어갔다. 스틱으로 등산로를 벗어난 곳을 찔러보니 무릎 깊이까지 가는 곳도 있었다. 같이 가던 종호가 제대로 된 눈 산행을 한다며 좋아했다. 능선에 올라 오른쪽 적상산으로 가려고 했는데 눈이 깊어 포기하고 반대편 향로봉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니 한 여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향로봉에서 다시 만났는데, 서울서 왔고 금남정맥 산행을 하다가 블랙야크 인증을 하러 잠시 들렸다고 했다. 이렇게 산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면 괜히 즐겁다. 종호가 직접 농사지은 삶은 옥수수 하나를 주었다.
자리를 펴고 시산제를 지냈다. 산 아래에 있는 친구들도 안국사로 올라오게 하여 같이 시산제를 지내려고 했으나 겨울에는 안국사 통행을 막는다고 하였다. 덕유산과 적상산 신령께 산행에 대한 의욕이 꺾이지 않고, 내가 먼저 모임을 챙기고, 산행하면서 다치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산에서 배운 깨달음으로 인간 세상에서 각자 역할을 힘있게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늘 겸손하겠다고 마음 담아 올렸다. 내가 얼마 전 엮은 ‘속리산이 되리라’라는 책도 산신령께 올렸다.
종호가 시산제 음식으로 수육을 싸 왔다. 등산 칼로 조금씩 저미어 먹는 재미가 컸다. 이는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그렇게 먹는 사이에 젊은 남녀 두 쌍이 왔다. 산의 건강한 기운이 밝은 얼굴에 가득했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향로봉 정상에서 내려와 능선 삼거리에서 덕현, 정식은 먼저 내려가고 종호와 난 적상산 부근까지 다녀왔다.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정상은 통신탑으로 막혀있고 능선에선 조망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나무 틈새로 스키 슬로프가 설치된 덕유산 정상이 우람하게 보였다. 내려가면서 나나 종호 모두 한두 번 넘어졌는데 손목 통증이 오래갔다. 종호는 산을 내려가 붕대로 손목을 감기도 했다.
콘도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산에 다녀온 뿌듯함에 오랜만에 친구들까지 만났으니 술이 얼마나 마셨겠는가. 최고의 술 대장은 정식이었다. 나도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정식이가 주는 술을 받아마시고 있었다. 다음날 술병이 크게 났다. 다른 친구들은 짐을 정리하는데 난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봉규가 사다 준 컨디션, 멀미약,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니 조금씩 나아졌다. 문석이가 내 차를 운전하고 보은까지 왔는데, 다른 친구들도 함께 와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친구들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2025. 2. 24.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