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가진 것이 있어야 무너질 수 있다 (금북정맥1)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5-05-23 조회수 : 21

가진 것이 있어야 무너질 수 있다 (금북정맥1)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속리산 천왕봉(1,508m)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여 칠장산(492m) 가까이 와서 다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이 나누어진다. 세 정맥이 나뉘는 지점이다. 금북정맥은 여기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면서 칠현산(516m), 서운산(547m), 성거산(579m), 광덕산(699m)을 거치고, 백월산(565m)에서 다시 북서진하면서 덕숭산(495m), 가야산(678m), 일락산(521m) 등을 솟구치게 한 후, 은봉산(283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성왕산(252m), 백화산(284m) 등을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서서 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하고 서해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가면서 물을 전혀 만나지 않는다. 산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니, 그와 함께하면 맥의 기운이 산을 걷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옮겨질 것이다. 금북정맥의 도상거리는 약 279km.

 

2025. 3. 8.() 금북정맥에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 2월 발이 푹푹 빠지는 눈 산행으로 충북알프스 종주를 멋지게 마무리한 칠보산악회와 함께다. 아쉽게도 김 사무장이 친척 결혼으로 빠졌다. 만나기로 한 만승무수노인정에 가니 성호와 송 대표가 벌써 와 있었다. 성호는 내 얼굴을 가만히 살피더니 밤에 한 잔 하셨군요라고 했다. 술 마신 탓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전날 윤석열에 대한 구속이 취소되는 날벼락을 맞아 기본적으로 기운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것은 4일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살아가는 흥이 나지 않는다.

내 차를 노인정 앞에 세우고, 차 두 대로 출발지인 칠장사로 이동했다. 일행끼리 칠장사를 말하며, 먼저 2023. 11. 29. 그곳 요사채에서 불에 태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을 떠올렸다. 자승은 불교 권력을 사유화하고 정치 권력과도 밀착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가 목숨을 끊었을 때 국정원 대공 수사팀이 대거 현장에 왔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김건희 지시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불에 타 사라졌던 요사채는 새로 다 지어졌다. 위 사건으로 1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칠장사 안에서 요동이 쳤을 터인데,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산행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자세했다. 작은 개울을 건너는 나무다리 난간에는 기원을 담은 여러 색깔의 리본이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런 식의 기원엔 영 마음이 가지 않는데 송 대표 권유로 다리 위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무다리 바로 위에는 표주박 모양을 한 돌이 세 개 이어져 샘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송 대표가 먼저 마셔보고는 맛이 달다고 하였다.

 

흙길이라 발바닥이 편해야 하는데, 발이 받치는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어서 산의 기운과 하나 되길 바랄 뿐이었다. 산은 잡목을 다 없애 확 트였다. 산에 손을 많이 댔다는 느낌이었다. 능선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오른 능선 지점에서 금북정맥은 남쪽으로 흘러간다. 정맥의 시작점은 반대 북쪽으로 몇백 미터 더 가야 한다. 능선에 있는 의자에서 술 몇 잔과 성호 처제가 싸 준 김밥 몇 줄을 먹고는 3정맥 분기점까지 다녀왔다. 먼저 칠장산 정상에 다녀온 아저씨는 그렇게 내려오는 우릴 보고 조금만 더 가면 칠장산 정상이라고 하였으나, 우린 힘을 아끼고 오로지 금북정맥에만 충실하기 위해분기점에서 발을 돌렸다.

능선길은 완만하고 편안한 흙길이었다. 응달은 아직 눈이 꽤 쌓여 있었다. 아마도 우리에겐 마지막 눈 산행이 될 것이다. 서쪽으로 소나무들이 줄기와 가지가 마구 부러지고 뜯겨나간 것이 보였다. 지난겨울 습기가 많은 눈(습설)에 당한 피해다. 솔잎 위로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무너진 것이다. 그렇게 피해를 입은 소나무들이 계속 나타났다. 소나무의 30~40% 정도가 피해를 당한 것 같았다.

본래 소나무와 참나무는 서로 경쟁 관계다. 햇빛을 더 많이 보기 위해 키를 키운다. 여름에는 넓은 잎을 가진 참나무가 우세할 것이다. 그러나 가을에 참나무 잎인 진 다음에는 초록 잎을 여전히 갖고 있는 소나무가 마음껏 햇빛을 받으며 몸을 키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소나무에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가지에 잎이 없는 참나무는 아무리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쉽게 꺾이지 않는데, 잔가지에 잎을 잔뜩 달고 있는 소나무는 심한 바람과 무거운 눈에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민비 님은 이것을 보고 가진 것이 있어야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가진 것이 있으니 무너지는 것이다라고도 했던 것 같다. 반대로 가진 것이 없으면 무너질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니, 탄핵을 앞둔 윤석열이 떠올랐다. 가진 것이 너무 많고 또 더 가지려고 하니 크고 참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금북정맥에서 처음 만난 봉우리는 칠현산(516m)이다. 곳곳에 의자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의자 위에 수건을 깔고 그 위로 잔을 놓고 술과 차를 따라 마셨다. 땅콩, 호두, 건포도 같은 마른안주도 수건 위에 뿌려 놓았는데, 술잔과 어울리는 모습이 예뻤다. 산이 높지 않다 보니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830분쯤 산행을 시작했는데 10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칠현산에서 덕성산까지 내리막과 오르막이 두 번 반복되지만 완만했다. 그 사이에서 낙엽길 위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김밥을 다섯 줄이나 싸 와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내어준 성호는 민비 님으로부터 밥 도시락을 하나 받았는데 밥이 맛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한참 머물며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밥을 먹는 사이 한 부부가 덕성산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들으니, 산행을 엄청 열심히 하는 분들이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산행길에 나서니 바로 덕성산이다. 그곳엔 정자도 있고 전망도 좋은데, 그곳에서 점심을 먹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덕성산에서 정맥을 따라 남진하다가 왼쪽 무술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그곳 표지판은 금북정맥의 옥정재까지 거리가 약 6km라고 적고 있었다. 다음에는 무술마을에서 갈림길로 다시 올라 옥정재까지 갈 것이다. 너무 짧은 산행이 아닐까, 오히려 걱정되었다. 갈림길에는 안성시와 진천군에서 만든 표지판이 같이 있었는데, 우리 대부분은 안성시 것이 더 낫다고 평가했다. 나중에 송 대표는 진천군의 정모 국장과 통화하면서 그 이야기도 했다.

갈림길에서 다소 급한 경사를 내려오면 꽤 긴 임도가 나온다. 그 임도를 따라 1킬로미터 정도 걸으니 내 차를 세운 곳이 나왔다. 오후 130분밖에 되지 않았다. 산행을 하다 만 것 같은 기분도 들었으나, 이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내겐 오히려 다행이었다. 새로 시작한 금북정맥 2구간이 기다려진다.

(2025. 3. 11.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