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깃대봉에 깃대를 꽂고 서둘러 내려오다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5-05-23 조회수 : 23

깃대봉에 깃대를 꽂고 서둘러 내려오다

 

2025. 3. 30.()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맑은 날. 31산악회 친구들과 함께 마패봉에 가기로 한 날이다. 친구들은 고사리 주차장에서 조령 3관문을 거쳐 마패봉에 올랐다가 다시 올랐던 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거리가 짧고 같은 길 왕복이라 재미도 없을 것 같아, 난 조금 일찍 가 조령산 휴양림 입구에서 깃대봉에 올라 조령 3관문, 마패봉, 신선봉을 거쳐 내려오려고 했다.

상홍이가 전날 전화로, 자기 아내와 서동이 아내도 같이 간다며 내 집사람도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아내는 전날 자기 전까지만 해도 같이 간다고 했는데, 다음날 새벽에는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했다. 전날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에 가 찬 바람을 쐰 게 조금은 무리가 된 듯하였다. 새벽 630분쯤 보은 집을 나섰다. 차량에 찍힌 온도는 영하 6도였다. 막 피려고 나온 목련 꽃봉오리 끝이 동상을 입어 누렇게 변했다.

가는 도중 서동에게서 전화가 와, 청주 출발팀은 오다가 시루봉 휴게소에 들른다고 하였다. 거기서 합류할까 잠시 망설인 끝에 나 먼저 간다고 했다. 산행을 조금 더 하고 싶었다. 고사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내 뒤를 이어 주차한 사람이 내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물었다. 깃대봉에 간다고 하니, 자기도 그리로 간다며 반가워했다. 그는 괴산에 사는 사람이었다. 깃대봉 맞은편에 있는 연어봉, 신선봉, 마패봉 능선은 많이 가보았고 깃대봉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신선암봉까지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3관문을 거쳐 깃대봉에 오르려고 했다. 인사를 마치고 내가 먼저 자리를 떴다.

 

주차장에서 3관문 쪽을 향해 천천히 걷는데 17년 전(2008) 가족과 함께 신선봉에 올랐다 내려와 걷던 길이 지금도 그대로였다. 휴양림 입구에서 깃대봉에 오르는 들머리를 찾으려고 했는데 표지판이 나오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더 내려가 들머리를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괜히 시간만 낭비하지 않을까 싶어 나도 3관문을 통해 깃대봉에 오르기로 하였다.

3관문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옛날 그 길을 걸어 조령을 넘나들었을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떠올리며 걸었다. 3관문에 다다르니 그렇게 온 길 말고 계곡을 따라 휴양림으로 연결된 길도 있는 것 같았다. 3관문 입구 앞에서 신발 끈을 고쳐매는데 주차장에서 만났던 사람이 지나갔다. 그와 다시 인사를 하고 내가 먼저 깃대봉으로 향했다. 3관문 넘어 경상도 쪽에 있는 매점 같은 곳에서, 깊은 산 속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스피커를 통해 노랫소리가 크게 흘러나왔다. 짜증이 났고, 서둘러 올라가는 데도 노랫소리가 뒤통수에서 쉬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3관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서동이랑 통화했을 때(07:57) 막 시루봉 휴게소에 들어가 막걸리 한 잔 마신다고 했으니 그 시간과 그들이 휴게소에서 주차장까지 오는 시간을 합한 시간 안에 난 3관문에서 깃대봉에 다녀와야 했다. 그 시간이 애매해 조금 서두르기도 하고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오르는 구간의 상당 부분이 계단길이다. 마지막 부분은 계단과 계단 사이 높이가 높아 조금 힘들었다. 깃대봉에 오르기 직전에 동쪽으로 부봉(917m)과 주흘산(1,108m), 남쪽으로 신선암봉(937m), 조령산(1,017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멋지게 보였다. 산 음지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다. 양지도 나무 그림자를 따라 일자로 눈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깃대봉 정상(835m)은 조망을 위해 주변 나무를 깎아 놓았다(09;11). 북쪽으로 신선봉(965m)에서 마패봉(92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 사방을 조망하면서 양주를 꺼내 마시려고 하는데 어느새 주차장에서 봤던 사람이 올라왔다. 짧은 시간에 세 번째 만남이다. 술잔을 건네니 주저하면서도 이내 받아 마셨다. 친구들과 3관문에서 마패봉에 오른다고 하니 그 길은 꽤 가파르다고 하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종호한테서 전화가 왔다(09:22). 3관문에 거의 다 왔다고 했다. 내가 지나치게 여유를 부린 것 같았다. 친구들 먼저 마패봉으로 오르라고 말하고는 뛰어서 내려갔다. 깃대봉에 서둘러 올라가 깃대만 꽂고 온 느낌이었다. 깃대봉에서 서쪽 한섬지기 방향으로 가면 말용초폭포가 나온다.

 

친구들은 3관문 앞 볕 좋은 곳에 몰려 술을 마시고 있었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승국이가 처음 나왔다. 정호도 오랜만에 나왔다. 정식이는 지난달 적상산에 이어 연달아 나왔는데 전날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현장에서도 우연히 만났는데 무척 반가웠다. 나와 마찬가지로 정식이도 아내와 같이 참여했다. 상홍과 서동의 처들은 마패봉은 오르지 않고 3관문에서 있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산악대장 해균이가 앞장섰다. 발목이 아파 긴 산행은 못 하는 해균이지만 막상 산에 발을 내딛기만 하면 옛날 실력이 살아나 성큼성큼 앞서간다. 내가 뒤에 바로 붙었다. 또 누가 뒤에 오나 돌아보니 승국과 정호다. 처음으로 산행을 같이하는 승국의 산행 실력에 조금은 놀랐다. 평소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정호도 평소 17층 아파트를 걸어 다닌 것이 도움이 된다며 미소지었다. 이제 우리 산악회에서 핵심 산행 꾼이 된 종호도 잘 따라붙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경사가 꽤 되는 암벽 구간이 이어졌다.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곳도 자주 나왔다. 무릎이 좋지 않은 정식이는 도중에 내려갔지만 후미에 있던 상홍, 덕현은 끝까지 올라오겠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부봉과 주흘산이 멋지게 바라뵈는 곳에서 해균과 사진을 찍고 다시 오르려고 하는데 바로 뒤따라오던 승국이가 보이지 않았다. 정상(925m)에 오르니(10:27) 승국이가 그곳에 있었는데, 그는 오히려 그곳에서 우리를 찾고 있었다. 우리랑 다른 곳으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둥글고 크게 생긴 마패봉 표지석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탑처럼 돌을 쌓고 그 아래에 널찍한 돌들을 깔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해균이 안내로 그곳으로 가 술과 보이차를 마시며 대화를 즐겼다. 친구들은 내가 가져간 보이차를 좋아했다. 술은 마다하면서도 보이차를 찾는 친구들이 있었다. 총무인 종호가 딸기와 바나나를 이쁘게 손질해 가져 왔다. 보리수 담금주도 챙겨왔다. 모임을 위해 늘 솔선수범하는 친구가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달 적상산 산행 때 빙판에서 넘어져 다친 손목이 아직도 아프다고 했다. 그건 내 왼 손목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부봉, 탄항산을 거쳐 하늘재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은 다시 포암산, 꼭두바위봉, 대미산, 황장산, 죽령, 소백산으로 이어진다. 그 장쾌한 능선길을 반드시 걸어보리라.

우린 왔던 길로 도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바꿔 신선봉 쪽으로 능선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 능선에도 암릉이 많았다. 바위를 쪼개고 크게 여러 갈래로 우뚝 솟은 소나무의 기개가 장했다. 그 기개를 배우고 싶었다. 무척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 생명력을 다해 살아내는, 그 처절하고 철저한 삶의 의지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산행의 또 다른 묘미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표지판이 나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 오지 않고 내려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고 먼저 내려가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던 터라 조금은 불안해졌다. 내가 앞장서 갔는데 표지판은 없어도 왼쪽으로 뚜렷하게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선뜻 내려서지 못하고 산행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해균이를 기다렸다가 그의 승낙을 받고 그쪽으로 내려갔다. 길이 끊기면 다시 올라와야 한다고 하니 종호가 너무나도 쉽게 그렇게 하면 되지라고 반응했다. 그런 반응이 조금은 놀라웠다. 산행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다행히 내려가는 길은 어렵지 않게 잘 나 있었다.

송어회로 점심을 먹는데, 모처럼 일행이 많으니 재미가 배가되었다. 특히, 처음 나온 승국이는 건배사를 길게 해도 되냐며 자신감을 보였다.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내공이 느껴졌다. 승국이 전에, 가장 늦게 합류한 봉규는 어느새 고참 행세를 했다. 평소 산성에 자주 다니고 모임에도 꾸준히 나오려고 하는 친구의 태도가 보기 좋았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화음을 내는 것이 모임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홍이는 내가 얼마 전에 낸 속리산이 되리라라는 책을 훗날 늙어서도 지난날을 돌아보며 읽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쉬 늙지도 않을 것이다.

 

일행 : 김덕현, 박봉규, 박상홍, 박상홍 처, 박승국, 오원근, 엄정식, 이정호, 이종호, 이해균, 전서동, 전서동 처(12)

(2025. 4. 1.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