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5-05-23 | 조회수 : 19 |
꽃에 대한 예의 (금북정맥 2)
생명이 가장 보기 좋을 때는 활짝 웃을 때다. 나무와 풀 같은 식물은 꽃을 피우며 환하게 웃는다. 웃는 꽃은 바라보는 이도 웃게 만든다. 아니 웃어야 한다. 꽃을 바라보며 웃는 것은 꽃에 대한 예의다. 우린 진천 무이산(463m)에서 그 예의를 다하고 왔다.
2025. 4. 12.(토) 금북정맥 2구간을 하는 날이다. 김 사무장님이 건강검진 때문에 이번에도 아쉽게 빠졌다. 보은 장갑리에서 산행을 마치는 지점인 옥정재까지 1시간 20분 걸렸다. 일행 4명은 먼저 와 있었다. 다시 내 차를 타고 광혜원면 구암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는 무수저수지 가에 벚꽃이 활짝 피어 이른 시간임에도 꽃놀이하는 이들이 있었다.
임도 입구 한쪽에 차를 세우고 산행에 나섰다. 임도 입구의 닫힌 철문 위로 ‘산불 방지를 위해 입산을 통제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는데, 통제 기간이 따로 적혀 있지 않아 이를 무시하고 산에 올랐다.
처음엔 500여 미터 임도를 걸어야 하는데 지난달 산행 때 내려오던 그 임도에 눈이 쌓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호가 임도 가장자리 바닥에서 가냘프게 올라온 꽃을 발견했다. 솜나물이었다. 자주 눈에 띄는 꽃은 아니다. 나도 올해 처음 보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내가 낯선 꽃 이름을 금방 말해버리는 것에 일행이 조금 놀라는 것 같기도 했다.
산엔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민비 님이 보라색 제비꽃을 가리키며 예뻐했다. 내가 “흰색 제비꽃이 있는데 이것은 산에 어느 정도 올라가야만 볼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안 가서 흰색 제비꽃이 나왔는데, 잎사귀가 내가 생각했던 모양이 아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내 머릿속에서 흰색 제비꽃과 노랑제비꽃이 뒤섞여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민비 님에게 말하려 했던 것은 노랑제비꽃이었다. 우리가 만난 흰색 제비꽃은 남산제비꽃이었다.
금북정맥 능선에 거의 다다를 무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무시하려다, 혹시 산불감시원이 임도 입구에 세워놓은 차에 있는 번호를 보고 전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에 통화하니 맞았다. 일행 사이에 잠시 논란이 있었으나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루 산행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갑자기 패잔병이 된 느낌이었다. 대신 옥정재에서 무이산에 왕복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다시 옥정재로 가는 차 안에서 민비 님이 정맥 산행을 하다 보면 낯선 곳을 두루 가 보게 되어 좋다고 하였다. 수긍이 갔다. 나도 금북정맥 산행 덕분에 광혜원면과 이월면에 처음 오게 되었다.
옥정재 한쪽은 한창 공사중이었다. 무이산 가는 표지판이 능선이 아닌 임도를 가리키고 있어, 내가 고개를 넘어 반대편까지 가 살펴보고 오는데 성 팀장님이 공사판에 있는 한 사람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그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임도를 따라가면 계단이 나온다고 했다. 둘이 걸어가 일행과 합류하였는데, 성호가 다시 공사판의 그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성 팀장님이 이미 물어본 사실을 성호는 몰랐던 것이다. 공사판 사람은 같은 일행에서 사람을 달리하여 두 번이나 물어보니 의아했을 것이다. 오합지졸이 되어 버렸다.
가파른 계단 길과 오르막을 20여분 오르면 정맥 능선이다. 오르막을 하나 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를 마셨다. 민비 님이 따 온 진달래꽃을 술잔에 띄워 마셨다. 그렇게 마시니 패잔병, 오합지졸 같았던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꽃의 힘이다. 진달래꽃만이 꽃이 아니다. 산에 오면 누구나 꽃이 된다. 꽃이 꽃을 바라보니 몸과 마음이 어찌 환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와 늘 혼자만 의자가 없던 송 대표에게 주었다. 송 대표는 자신의 가방 뒷주머니에 쏙 들어간다며 좋아했다.
산행마다 늘 성호가 이번에는 어떤 먹거리를 가져올까 기대되는데, 이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날은 닭가슴살을 넣은 샌드위치와 토마토 등으로 만든 양주 안주를 만들어 왔다. 냉이 김밥까지. 이 모든 것을 새벽에, 이웃에 사는 처제가 싸 주었다고 한다. 좋은 안주에 양주도 한 잔씩 걸쳤다. 어느 순간 성호가 앉아 있던 의자 다리가 부러지면서 뒤로 넘어졌다. 멋지고 맛난 먹거리로 폼 잡았는데 무게까지도 너무 잡았던 모양이다.
산에 진달래가 기대 이상으로 폈다. 멋진 진달래 무리가 계속 나와 우리를 즐겁게 했다. 꽃 속에 묻혀 꽃처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진달래꽃을 원 없이 보고 즐겼다. 무이산(463m)은 정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무이산 정상에서 덕성산부터 우리가 이날 왔었어야 할 능선을 가늠해 보았다. 그 능선을 언제 다시 탈 것인가 고민 끝에 6월에 야간산행으로 하기로 하였다. 우리 산악회에서 처음 시도해 보는 야간산행이라 벌써 설레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무이산 정상에서 다시 정맥길로 돌아오는데, 지난겨울 습설(濕雪)로 밑동부터 뒤틀려 넘어진 소나무가 보였다. 보통은 나무의 가지나 줄기 윗부분이 부러지는데 이 나무는 맨 아래부터 사정없이 뒤틀려 근육이 파열됐다. 그렇게 파열된 모양이 안타깝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이를 말하며 열심히 살펴보는데 송 대표가 “지금 바라보는 곳의 반대편 쪽의 파열은 또 다른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그곳은 안에 꿀이 든 빵을 반으로 쪼개려고 할 때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꿀이 여러 실처럼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손가락을 대 보니 송진이 묻어 나왔다. 이 나무는 이렇게 한 생애를 마쳤다.
송 대표는 정상에 올 때 이미 이 나무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다고 했다. 평소 대개 무리의 맨 뒤에서 비교적 느리게 산행하는 편이었는데 그 느림이 산을 더 자세하고 깊게 살펴보게 한 것 같았다. 송 대표에게 “그동안 얕봤는데 그게 아니네”라고 말하니 발끈했다. 성 팀장님도 송 대표와 마찬가지로 정상에 오기 전에 그 나무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산행하면서 바라보는 각도나 깊이가 다 다르다. 이게 개성일 것이다.
돌아오는 능선길에 있는 널찍한 쉼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쉼터 바로 아래에 있는 진달래 무리가 운치가 있었다. 더 아래 멀리에는 무이산 아래를 터널로 뚫고 가는 평택제천고속도로가 보였다. 민비 님이 싸 온 상추 인기가 좋았다. 성호가 싸 온 냉이 김밥은 이때 먹었는데 순하고 은은한 맛이 남달랐다. 송 대표는 싸 온 먹거리는 남기지 않고 다 먹으려는 성향이 있는데, 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내가 “그만 먹으라”라고 하였더니 “집에서도 듣지 않는 소리”라며 다시 발끈했다.
점심을 다 먹으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산행을 마칠 때까지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옥정재에 있는 ‘이월서가’에서 커피를 마셨다. 송 대표가 연락해 진천군의 정덕희 국장님도 합류했다. 이분과는 내가 진행하는 MBC충북 ‘시사토론 창’에서 같이 방송한 적도 있어 무척 반가웠다. 고향이 바로 아래 이월면인데 옛날 ‘핵교’ 다니던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 산행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꽃 때문에 실컷 웃고 즐거웠던 하루였다.
(2025. 4. 13. 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