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5-05-23 | 조회수 : 32 |
또다시 못제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애만 쓰고 전혀 다른 결과에 다다른다. 이번 산행이 그랬다. 지난달 금북정맥 2구간 산행이 산불을 막기 위한 입산 통제로 상당 부분 어그러진 터에, 이번에는 기분전환으로 비조령부터 화령까지 백두대간 산행을 하려고 했는데, 들머리를 전혀 엉뚱하게 잡는 바람에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말았다. 산행의 기술로 따지자면 치욕스러운 일이나, 전에 지났던 구간을 거꾸로 가면서 또다시 못제를 만나는 인연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 산행 모임에서는 세 번째 가게 되는 것인데 산악회 이름을 ‘못제 산악회’로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2025. 5. 6.(화) 대체로 흐림
지난 일요일엔 성찬, 아내, 선재와 함께 약초 산행을 하면서 산삼을 한 뿌리 캐고, 부처님 오신 날인 월요일에는 문장대 아래 중사자암에 가고, 화요일에 또 산행하게 되었으니 3일 연속이다. 이날 산행코스는 백두대간이지만 지도로 보면 비교적 완만하였다.
화령에 차를 두 대 세우고 내 차로 비조령으로 갔다. 전에 갈령부터 못제를 거쳐 장고개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 산행을 하려다가, 못제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백두대간을 타고 비조령까지 왔었다. 그때 못했던 못제~장고개 구간은 지난 12월 보강했다. 이렇게 우리 산악회에서는 못제에 두 번을 갔다.
비조령 터널 부근에 차를 세우고 나무로 만든 계단 길을 오르는데 산의 분위기가 전에 못제에서 내려올 때와 비슷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조령을 사이에 두고 양쪽 산으로 가는 길 모습이 비슷한가 보다 했다. 이때 나침반으로 확인했어야 했다.
예상보다 오르막이 가팔랐다. 긴 오르막을 지나니 멋진 조망바위가 나왔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활엽수의 연두빛 신록이 소나무의 짙은 초록과 어우러진 모습이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이즈음 산행의 백미는 이 어우러짐을 보는 데 있다. 일행 모두 조방바위에서 한참 머물며 신록에 물들었다.
도중에 간식을 먹는데 이날도 성호 처제가 싸 준 주먹밥이 인기였다. 주먹밥 안에는 된장 등 양념을 넣고 겉을 곰취, 봄동 등으로 쌌는데 눈으로 보고 입안에서 은은하게 느끼며 씹는 맛이 그만이었다. 다음 산행에서는 또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곳곳에 철쭉이 활짝 피어 있고, 진달래는 끝물이라 아주 가끔 시들어가는 모습으로 눈에 띄었다. 화려한 철쭉과 달리 은은하고 수수한 진달래는 시들어가는 모습도 내겐 매력이 있었다. 각시붓꽃도 눈에 자주 띄었다. 붓꽃이란 이름이, 꽃이 피기 직전 몽우리가 먹을 묻힌 붓 모양을 한 데서 나온 것임을 얼마 전에 알게 되어 열심히 살펴보았는데, 각시붓꽃의 붓 모양 몽우리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 몽우리가 조금씩 부풀어 하나둘씩 꽃잎을 펼치는 모습이 무척 예뻤다.
산행을 이어가는데 내가 미리 지도로 본 봉황산으로 가는 길과 다르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침반을 보니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남동쪽이었다. 불안이 엄습하였는데, 전에 산행에서 보았던 나무줄기가 한번 원을 만들고 올라간 나무를 만나고서 드디어 전에 왔던 구간을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지난번 내려와 점심을 먹었던 비조령 터널의 반대편으로 오다 보니 들머리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잡았던 것이다. 산악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논의 끝에 계속 가던 대로 가기로 했다. 다시 못제를 만났다. 나로서는 네 번째다. 큰 인연이다. 못제 옆 표지판에 적힌, 견훤을 기리는 시를 이번에는 내가 낭송했다. 견훤이 이 못제에서 목욕한 기운으로 적군을 무찌르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상대편이 못제에 소금을 들이붓는 바람에 목욕하지 못해 싸움에서 지게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못제다. 못제가 훨씬 더 가깝게 다가왔다. 지난 5월 4일 약초 산행 때는 성찬의 안내로, 견훤이 태어났다는 문경시 가은의 아차마을에 다녀오기도 했다. 상주, 문경 일대는 견훤과 관련된 설화를 간직한 곳이 아주 많다. 못제는 앞으로도 여러 번 가게 될 것 같다.
금북정맥을 잠시 버리고 백두대간으로 바람을 피운 것에 대해, 금북정맥의 산신령이 노해 우리가 엉뚱한 길로 가도록 한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해 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산행에 잠시 당혹스럽긴 했으나, 지난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되니 그만큼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산과의 친구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리라.
갈령에서 차가 있는 비조령까지 택시비는 2만 원이었다. 성 팀장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차를 가지러 다녀오는 사이, 나머지 일행은 찻길을 걸었다. 신록의 기운 때문에 덜 지친 것 같았다. 다음 야간산행을 기약하면서 기분좋게 헤어졌다.
(2025. 5. 10.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