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5-12-30 | 조회수 : 6 |
2025. 12. 25.(목) 대체로 흐림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처럼 밤 12시까지 야근을 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의뢰인과 7시간 동안 의견서를 작성했다. 순간순간 힘든 고비를 넘겼다.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낙가산이나 갈까 했는데 마음이 바뀌어 대둔산으로 갔다.
산에 오르기 전 화장실에 들렸는데, 그동안 쌓인 피로에 전날 밤 야근이 무리가 되었는지 장출혈이 생겼다.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었다. 산으로 가는 길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올라간 쪽 마을 이름이 수락리이고 계곡 이름도 수락계곡이라 수락폭포를 기대했는데 작았다(10:23). 표지판에 백제 사람들이 그 폭포에서 기상을 키웠다고 하는데 그럴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수락폭포를 지나서는 가파른 칼날 능선인데 계단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출혈 걱정 때문인지 어질어질한 느낌도 들었다. 왼쪽으로 묵직한 바위산이 보이고 정상이 있는 능선에는 하얗게 상고대가 피었다. 상고대가 핀 곳에 올랐는데 나뭇가지 상고대가 햇빛이 비치는 쪽은 녹고 반대쪽만 남아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영롱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상고대는 더 풍성해졌다.
정상에서 좌우로 펼쳐진 암릉이 상고대와 어울려 멋졌다(11:33). 다른 이들도 그 모습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낙조대 쪽으로 가는데 눈발이 날렸다. 낙조대 표지석이 길쭉한 게 보기 좋았다(12:03). 그 뒤를 지나는 젊은 친구와 함께 사진으로 담았다. 눈발이 조금 더 세지는데 무척 예뻤다.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귤을 먹기 위해 잠시 쉬면서 지나온 낙조대 쪽을 바라보는데 거기에 절경이 있었다(12:15). 상고대가 나무는 물론 바위와 땅에도 온통 피어 낙조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멋진 모습에 홀로 감탄하고 있는데 낙조대에서 봤던 젊은 친구가 왔다. 그에게 귤 반쪽을 주며 저 멋진 풍경을 보라고 했다. 그가 떠난 후에도 한참을 더 머물며 그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이 풍경이 나를 대둔산으로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얼음에 갇혀도 얼어 죽지 않는다.
깊게 가라앉은 호흡으로 몇 숨 자고 봄날 당당하게 살아나리라.
상고대에 갇힌 나뭇가지가 하는 말이다. 나뭇가지에게 상고대가 따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출혈이 이틀은 더 갔다.
(2025. 12. 30. 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