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새해 첫날 충북알프스 네번째 산행(피앗재~문장대)을 했다. 충북알프스는 속리산 국립공원의 구병산, 천왕봉, 문장대, 묘봉을 잇는 약 40㎞의 능선인데, 구간을 나누어 산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눈이 왔다. 피앗재에서 천왕봉 직전까지는 사람 발자국이 없어, 처음으로 눈길을 밟고 나가는 재미가 컸다. 드넓게 펼쳐진 산줄기들은, 흰 눈이 보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흑백의 거친 대조를 보이며, 태초의 웅장함을 뽐냈다. 저절로 기운이 솟았다.
천왕봉을 지날 무렵, 눈발이 휘날리며 탁 트인 조망이 사라졌지만, 나뭇가지에 앉은 상고대와 눈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재미는 여전했다. 차가운 날씨로, 쌓인 눈에 물기가 없어 등산화가 젖지 않고, 발에 땀도 차지 않아, 바깥으로는 눈을 헤쳐 가지만 등산화 속은 뽀송뽀송했다. 이날 속리산에 온 사람들이 다 그렇게 즐거운 산행을 하였을 것이다.
난 그런 즐거움 속에 속리산 주능선에 있는 신선대 휴게소에 가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얼마 후 그렇게 해도 되나 하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 감염 걱정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는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이 있다. 항암주사를 맞으면 후유증으로 면역수치가 크게 떨어져 고열이 날 때가 있다. 고열이 계속되면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입원이 까다롭다. 열이 나면 무조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음성 결과가 나와야만 입원이 가능하다. 우린 이런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에 우리 가족은 마스크 쓰고 손 씻는 것은 당연하고, 외부 식당에서 사람을 만나 밥을 먹지 않는다. 이런 사정으로, 휴게소 안에서 먹는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날이 추워 밖에서 먹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10여명이 다함께 투명 비닐을 뒤집어쓰고 그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뒤집어 쓴 것은 비닐막쉘터라고 한다. 겨울 산에서 추위를 이기고 식사를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안에서 열기를 내면 부풀어 올라 그 안에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러나 거의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 10여명이 다닥다닥 붙어, 요란하게 떠들며 밥을 먹기 때문에, 그 가운데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있다면 전부 감염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정부나 대다수 시민이 아무리 노력해도, 극히 일부라도 저렇게 나 몰라라 하며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피해는 그들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파만파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사회·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공동체의식이 실종된 현장에 화가 났다.
지친 발걸음으로 신선대 휴게소에 도착했다. 눈발과 추위는 여전했다. 주인장이 열린 창 안에서 감자전을 굽고 있었다. 열린 창을 보니, 밖에서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해 밖에서 먹는데, 주인장이 추우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한 순간 방심으로 그동안 쌓아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공동체의식은 무조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보이는 나만의 편리함을 잠시 포기하여,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골고루 편안해지자는 것이다. 개인들이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자기만을 위해 행동한다면, 공동체는 무너지고 결국 개인이 설 자리도 없어진다. 그러니 그런 행동은 진정 자기를 위한 것도 아니다. 공동체의식으로 무장된 것이어야 참다운 이기심이다. 개인과 공동체는 별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