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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책읽기의 위력 (2021. 4. 29. 보도)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1-08-26 조회수 : 224

‘뼘’은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을 완전히 펴서 벌렸을 때 두 끝 사이의 거리로, 아주 짧다는 뜻으로 쓰일 때가 많다. 오래전부터 일찍 출근하여, 5~10분 정도 책을 읽고 있는데, 무척 짧은 시간이라, 그게 무슨 책 읽기가 되겠나 싶겠지만, 꾸준히 이어지면 위력이 있다. 이것을 ‘한 뼘 책 읽기’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난 책 읽기에 회의적이었고, 지금도 꽤 그렇다. 삶의 주요한 의미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인데, 이 깨달음은 스스로 현실 경계에 부딪히며 고민해야만 얻을 수 있지, 책을 통한 간접 경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오히려 해를 입을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다수 언론처럼 말이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 3학년에 복학한 겨울, 산속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그동안 자라며 억눌렸던 정서가 크게 흔들려 힘들었다. 고시원에서 왕복 50분 걸리는 절로, 4개월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후 5시에 산책을 다녀왔다. 눈을 머리에 소복하게 이고 온 날도 있었다. 나무와 풀, 바람, 햇빛 같은 자연을 꾸준히 살피고 느끼면서, 꼬였던 정서가 풀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그 무렵 불교를 접했다. 불교의 핵심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는 것만이 살아있다.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아침 시험공부를 하기에 앞서, 5분 정도 불교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읽으면, 두꺼운 책 하나 마치는데, 1년이 더 걸릴 때도 있었다. 느린 것 같아도, 책장은 넘어가고, 넘어간 종이의 두께가 깊어가는 것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렇게 금강경오가해, 선문단련설, 죽창수필 같은 책들을 읽어냈을 때의 기쁨은 컸다. 좋아서, 두 번 읽은 것도 있다.

이런 습관은 검사가 되어서도 이어졌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유희’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어, 영국에 1년간 연수 갔을 때, 영역본을 사 왔다. 원어인 독일어를 모르니, 영어로 된 것이라도 읽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 읽는데 1년 반 정도 걸렸다. 변호사가 된 후에, 이 책을 1년 더 걸려 한 번 더 읽었다.

약 3년 전부터는 시를 읽고 있다. 전에는 시 읽는 게 무척 힘들었는데, 언젠가부터 하루에 2~3편의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게 엄청 재미있다. 운율이 있으니, 천천히 리듬감을 주고 읽고 나면, 멋지게 노래라도 한 것처럼 감흥이 남는다. 이렇게 시 몇 편 근사하게 읊고, 차 한 잔 마시면, 온 세상이 다 내 것이다. 이 시간이 언제나 기다려진다.

이처럼 소리 내어 읽으며 다져진 내공은, 현실 삶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변호사로서 법정에서 변론하거나 증인신문 할 때, 당당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오랜 기간 다양하게 해 온 방송 활동이나 몇 번의 대중연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국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전날 본 ‘전설의 고향’ 줄거리를 말해보라 하였는데, 너무 소심해,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런 치욕을 겪었던 소년이 이젠, 경계에 부딪혀 생기는 불안을 이겨내고,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20년도 더 넘게 해 온, 아침 ‘한 뼘 책 읽기’의 위력이다.

충청매일 CC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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