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법을 한답시고, 150평 남짓 텃밭 두둑에 비닐을 씌우지 않고 풀도 뽑지 않았다. 풀은 땅 물기가 날아가는 것을 막고, 벌레가 흩어지게 하고, 그 뿌리가 땅속에서 썩어 거름이 되고 미생물이 잘 살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그러나 풀을 그냥 놓아두면 작물을 뒤덮는다. 베어주는 길밖에 없는데 예초기는 돌이 튀어 고추 따위에 흠집을 내기 때문에 낫으로 베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풀은 땅을 기면서 자라기 때문에 베기가 어렵다. 몇 번 베다가 끝내 자연농법을 포기하고, 휴가 내내 뙤약볕에서 뿌리가 깊게 박힌 풀을 뽑았다. 2년 전에도 실패했는데 앞으로 또 되풀이할 것 같다.
텃밭농사를 지은 지 20년째다. 전주, 인천, 서울에서 검사를 할 때도 텃밭농사는 놓지 않고 서울생태귀농학교까지 다녔다. 시골에 땅을 마련해 지금 크기로 텃밭을 가꾼 지도 6년째다. 주말에만 가기 때문에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많지만, 싫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텃밭농사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내 먹거리를 스스로 만든다는 즐거움 때문이다. 전에는 농사를 짓고도 제대로 해 먹지 못해 버리는 게 많았는데, 이젠 그게 확 줄었다. 감자만 해도 아침에 밥할 때 두 개를 삶아, 하나는 도시락에 넣어 사무실에서 먹고, 다른 하나는 아내가 먹는다. 오이는 아내가 날것으로도 잘 먹는데, 남는 것은 소박이김치나 장아찌를 만든다. 농사 경력이 쌓이니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리지 않는다. 주중에 청주 아파트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조차도 시골로 가져가 퇴비를 만든다. 이렇게 농사를 짓고, 알뜰하게 먹고, 퇴비로 만들어 밭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번거롭고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먹을 것을 스스로 만든다는 즐거움과 자연 순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뿌듯함이 번거로움과 힘듦을 훨씬 뛰어넘는다. 게다가 단 하루도 똑같지 않게 바뀌는 텃밭 모습은 나를 설레게 한다. 얼마 전 옥수수 틈에서 옥수수와 함께 자란 명아주를 보고, 경쟁하며 같이 자란다는 생각에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농사 말고도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어설프지만, 아들과 함께 녀석의 침대(침상)를 만들고, 책꽂이나 앉은뱅이책상도 만들었다. 아파트 텔레비전을 올려놓는 탁자 위로 만든 2단의 긴 장이 나름대로 멋도 있다. 시골에서 뒷간과 버섯재배사를 만들고, 비닐하우스도 나무를 짜 만들었다. 주변 펜션 주인이 비닐하우스가 멋지다며 한참을 보다 갔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종속된) 현대인들은 자기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스스로 해낼 수 있을까? 이젠 먹거리가 어떻게 길러지는지 관심이 없고, 사다 먹을 뿐이다. 내가 쓰고, 먹고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몰라도 세상에는 재미있고 행복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해내는 돈이 최고 미덕이라고 여긴다. 참된 행복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은 스스로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본다. 실패하면서도, 내가 해마다 밭 풀과 같이 살아보려고 애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