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 충청매일  ] 붓꽃은 오래전부터 예쁘게 보아 왔지만, 꽃이 핀 모습에서는 ‘붓’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궁금증이 풀렸다. 

 지난 5월 2일 재판 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게 되었다. 청사 동문 바로 안쪽에 핀 붓꽃을 가만히 바라보니, 꽃이 피기 전 봉오리가 마치 먹물을 머금은 붓 모양이었다. 붓꽃 이름은 바로 여기서 나왔던 것이다. 

 하루 전인 5월 1일,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있었다. 항소심 무죄 판결을 10대 2 다수결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내용이었다. 항소심 무죄가 대법원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으나, 사건의 처리 속도가 너무나도 이례적이었다. 

 환송 전 항소심은 3월 28일 기록을 대법원으로 넘겼다. 검사가 4월 10일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고, 피고인이 4월 21일 답변서를 제출하였다. 

 이제 대법원에서 심리를 개시할 밑바탕이 마련된 것인데, 대법원은 4월 22일 주심 대법관 및 재판부를 정함과 동시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전원합의체는 두 차례 심리를 거친 후, 전원합의체에 넘어간 지 7일밖에 지나지 않은 4월 29일 선고기일을 지정하였는데 그 날짜는 그로부터 이틀 후인 5월 1일이었다. 선고를 생중계로 하겠다는 공고까지 했다. 

 실질적으로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할 수 있었던 기간은 단 8일밖에 되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법조인이 8일이라는 기간 동안 대법관 12명이 6만 쪽이 넘는 기록을 검토하고 상고 이유를 실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므로, 상고 이유가 사실 판단에 관한 것이라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고가 기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항소심 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8일 동안, 1심이 유죄, 2심이 무죄로 각각 판단한 사건을 충분히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대법관 2명은 다수 의견에 반대하고 있었으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로 논박하면서 각자의 의견을 더 다듬어나가야 했다. 이것이 합의체를 둔 기본 취지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너무나도 무리하게 사건이 넘어온 지 35일 만에 선고한 것은, 대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강력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어 자기들이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공개 선언한 셈이다. 윤석열 검찰이 그 짓을 하더니 조희대 대법원이 그 망나니짓을 이어서 한 것이다. 

 다행히 환송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우여곡절 끝이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로 바꾸면서 조희대 대법원의 사법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로 인한 사법부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했다. 이번 사태는 사법개혁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판사들은 법원 입구에 심긴 붓 모양의 붓꽃 봉오리를 보고, 사법의 붓은 공정하게 휘둘러야 한다는 것을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 그 붓은 자연스럽게 꽃을 피워야지 망나니처럼 휘둘러 피를 불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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